아름다운 나의 집착

2009년 10월 03일

이태원 칠리칠리 타코

Posted by 마코토팬더 in 밥은 잘 먹고 다니니까

이태원 칠리칠리 치킨 타코
한참동안 ‘타코, 타코’ 노래를 하다가, 기어코 다녀온 이태원의 “chili chili”. 아쉬운대로 가까운 홍대 앞 “Dos Tacos”라도 가보자며 몇 일을 벼르고 있었는데 때마침 이태원에 볼 일이 생겨 퇴근하자마자 냉큼 들렀다. 꽤 오랜만에 다시 찾았더니 1층이 한결 넓고 밝아졌더라. 조금 오르긴 했지만 여전히 착한 가격. 함께 찾은 젠젠양과 치킨 타코와 비프 타코를 사이좋게 하나씩 시킨 다음, 절대 나눠먹지는 않고 각자의 타코만 냠냠 먹었다.

이태원 타코, 젠젠양

냠냠냠, 잘도 먹네 우리 젠젠양

어려운 요리도 아니지만 제대로 하는 집도 찾기 힘든 타코. (어줍잖은 타코를 못된 가격에 파는 가게들이 제일 싫어!) 샌드위치나 파니니를 썩 좋아하지는 않지만 타코나 케밥에 대해서 만큼은 열광하는 나인지라, 집이나 회사 가까이에서 괜찮은 타코집을 찾아보기 힘든 것이 늘 아쉽다. 서대문구의 명물이 되어버린 서소문 까페 거리(;;)에 까페 따위는 그만 생기고 맛있는 타코집 하나 생기면 참 좋겠네.

2009년 9월 28일

서울 와우북 페스티벌

Posted by 마코토팬더 in 아슬아슬한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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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여지없이 개최된 서울 와우북 페스티벌. 홍대에 사무실이 있었던 모 전자책 업체 근무하던 시절, 처음 주차장 거리를 텅 비우고 열려 나를 조금 당황스럽게 만들었던 이 행사가 올해로 벌써 네 번째. 솔직히 이렇게 계속되는 행사가 될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었다. 손꼽아 기다리지는 않지만 그래도 때가 되면 늘 “와-”하며 찾게 되는 행사, 올해도 뒤늦게 소식을 듣고 일요일 오후 홀홀단신으로 터덜터덜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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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더웨이 옆 행사장 입구에 놓여있던 가이드 맵. 주차장길 가판대 말고도 많은 볼거리들이 준비되어 있는 것 같지만 늘상 눈길이 가지는 않는다. 단순히 할인판매전 정도의 의미인 행사는 아닐텐데, 그 이상을 기대하게 될 만큼 리마커블한 볼 거리가 눈에 띄지는 않았다. 서둘러 가판대를 둘러보는 것 뿐이 아니라 좀 더 천천히 시간을 두고 즐길 만한 자리가 많이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기왕이면 까페나 상상마당 건물 안이 아니라 거리에서 오가는 사람들과 함께 놀 수 있는 판이었으면 더 좋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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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 1권을 다 읽어가고 있던 터라 1Q84 2권 정도만 가뿐하게 사들고 집에 가려던 계획은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새 금방 소멸되어 버렸다.  올해도 역시나 바리바리 이 책 저 책 사들이게 되더라. 책을 사들고 까페에 들어와 구입한 카드 영수증들을 늘어놓고 합을 내보니 한숨이 푹. 집에 아직 못 읽고 쌓아만 둔 책들이 일년치는 족히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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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꼭 읽고 싶었던 책들을 나름 저렴하게 구입했으니 나는 패배자가 아니다 하며 나름 마음의 위로를. 올해는 여행책을 세 권이나 샀다. (김훈의 자전거 여행 에세이 1/2권과 안그라픽스에서 나온 국내 여행서 1권.) 학수고대했던 안식휴가를 계획대로 인도에서 보내기는 어려울 거 같아 국내 여행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데, 그 탓인지 요즘은 국내의 여행지를 다룬 에세이나 가이드북을 보면 눈이 반짝거리게 된다. 이 날도 그 영향이 여실히 들어났던 듯.

올해 산 책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책은 사진에서 제일 아래 깔려있는 요리책 “New Asian Cooking”. 호주에서 ‘인기있던’ 요리책 Asian Cookbook의 부록으로 나왔다는 얇은 책자를 어떤 Food Stylist의 중고책 콜렉션에서 단돈 3천원에 건졌다. 태국 요리와 베트남 요리의 대표격인 메뉴들의 조리법과 아시아 식자재에 대한 설명히 친절하게 잘 나와있다. 태국 여행 이후 아시아 요리에 대한 관심이 한껏 고조되어 있었는데 무척 반가웠다.

이 책들을 사다놓고도 일주일동안 통 짬이 나지 않았던 탓에 제일 먼저 집어들었던 1Q84 하권을 이제서야  다 읽어간다. 다음은 김연수의 새 소설집을 읽어야지. 김연수의 글은 수필로만 읽어보고 정작 그의 본업일 소설로는 접해보지 못했던 탓에 살짝 기대 중. 어떤 통계에 따르면 독서의 계절인 가을의 도서 판매량이 다른 계절보다 낮다고 하는데, 생각해보면 나도 그동안의 가을에 열심히 놀러다니거나 열심히 일하느라 심신의 에너지를 바닥까지 소진해버리곤 하는 탓에 책 따위를 읽을 시간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올해는 책도 많이 샀으니 부디 좀 독서의 계절답게 보낼 수 있기를.

2009년 9월 11일

나의 두 번째 맥북

Posted by 마코토팬더 in 아슬아슬한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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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반 동안 애지중지 아꼈던 맥북이 지난 여름 비극의 침수사고를 당하면서 바로 혼수상태에 빠졌었다. 만방에 수소문하여 고쳐볼 방도를 찾아보았으나 마땅한 방법이 없더라. 지인의 권유에 따라 손수 맥북을 분해하여 침수 부위를 세척하는 작업도 시도해 보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이런 걸 점입가경이라 했던가, 안하느니만 못했던 상태로. 인터넷 어딘가의 알 수 없는 게시판의 댓글에서 저 멀리 성동구 어딘가에 있는 리페어샵이 침수당한 맥북을 성공적으로 수리한 경험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휴가까지 내어 찾아가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 곳의 그 믿음직스럽던 국가공인 PC정비사 1급 테크니컬 매니저 양반마저 한 달만에 유감의 말과 함께 내 맥북을 소생시키는 시술을 중단하겠다고 알려왔다. 갑작스레 가족을 잃은 듯 절망적이었다.

그 이후 한 달 즈음은 맥북을 새로 살까말까 하는 고민으로 보냈다. 하루는 사야겠다 마음 먹었다가, 다음 날은 쫌만 참아볼까 하는 마음으로 구매본능을 잠시 잠재웠다가, 또 그 다음 날에는 에이씨 인생 뭐 별 거 있나 싶은 마음으로 다시 구매를 결심하는 식의 번뇌가 반복되는 고통의 나날이었다.

그렇게 지내다가 난 결국 두 번째 맥을 구입했다. 배송받은 건 지난 주 토요일. 하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몇 일동안 제대로 한 번 보지도 못하고 있다가, 어제쯤 겨우 전원을 넣고 한참 마주 앉아 있을 수 있었다. 이거저거 돌려보고 어플리케이션도 설치하고 해 보고. 그런데 새 맥북을 받아들고도 이상하게 대면대면한 기분이 들더라. 애틋한 마음으로 일주일 쯤 기다리다가 흥분이 가라앉아서 그랬었는지, 아님 다른 마음인지. 어찌보면 헤어진 애인을 지우려고 새로 만난 여자에게서 예전 사람의 모습만 찾게 되서 찝찝한 기분과 비슷하달까. 아무튼 의외로 덤덤한 기분에 맥이 좀 빠졌다.

뭐, 말은 이렇게 해도 결과적으로는 새 맥북을 사서 무척 기쁜 상태. 신한카드의 부분 무이자 10개월 할부가 없었다면 누릴 수 없었을지도 모르는 행복이기에 결제의 순간부터 신한카드에게 무한한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었다. (더 많이, 더 열심히 긁어줄께요) 이 글을 쓰며 매끈하게 빠진 새 맥북의 직찍 사진도 찍어 올리고 싶었지만 디카가 요 몇일 다른 사람의 손에 쥐어져 있는 관계로 대신 애플 사이트 캡쳐사진을. ‘Mac이 좋은 이유’가 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절대 조목조목 대답해 줄 수 없지만 그래도 어쨌든 나는 두 번째 맥북을 샀다. 게다가 엄마는 아직 모르신다.

새 맥북 만세.

회사에서 팀별 과제로 리더십 세미나를 하며 읽게 된 책, “리더십과 자기기만”. 그야말로 모처럼 읽은 자기계발서였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선뜻 개선하기 힘든 조직 내에서의 갈등 요소를 ‘상자’라는 개념으로 알아듣기 쉽게 분석하여 설명해주고 선뜻 실천해볼 수 있는 행동 과제를 제시해주는 친절한 책. 책장을 덮는 순간부터 당장 내 자신을 변화시키고 싶다는 동기를 강하게 유발했던 재미있는 책이기도 했다.

이 책의 핵심적인 화제는 ‘상자’로 비유되는 자기기만으로, 조직 내에서 구성원들이 경험하는 갈등의 원인이 문제에 대한 자신의 책임과 마주하는 것을 회피하고 스스로를 정당화시키는 개개인의 자기배반 행위로부터 기인한다는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 책은 이러한 상태를 “상자 안에 갇힌 상태”라고 이야기하는데, 이는 다시 말해 나 아닌 타인에게 나와 동등한 가치를 부여하지 않고 상대를 단순히 나의 목표 성취를 위해 필요한 대상으로만 인식함으로써 문제를 마주할 때 스스로 인지할 수 있는 자신의 결함을 타인을 비난하는 것으로 정당화하여 문제를 악화시킨다는 것. 이러한 꼭지로부터 책 속의 화자들은 여러가지 사례와 비유를 통해 상자 밖으로 나오기 위해 이해해야 하는 개념과 실제로 상자 밖으로 나올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조목조목 알려준다.

‘상자’의 개념은 비단 회사와 같은 조직 내의 관계 뿐 아니라 가족이나 친구와 같이 개인적인 관계나 조직 대 조직과 같이 큰 범주의 관계에도 적용이 가능한 재미있는 개념. 이 책을 읽고 내 삶에 상자의 개념을 적용하여 고민하다 보면 갈등 요소의 여지가 존재하는 모든 관계가 스스로의 작은 변화만으로도 원만하게 개선될 수 있는 것은 물론 관계(조직)가 지향하는 목표를 성취하는 데에 더 큰 희망을 꿈꿀 수 있게 된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아무튼 히키코모리를 제외한 모두가 한 번쯤은 읽어볼만한 책. 책장도 휙휙 넘어간다. 특히 이런저런 인간 관계에 많은 불만이 쌓여있는 사람이나 자신의 조직에 대해 느끼는 문제를 적다보면 보물섬만큼 두꺼워질것 같은 사람들에게 꼭 추천. 나 역시 매사에 불만 많은 인간인데 이 책을 읽고난 후 내 자신의 문제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성찰하면서 당장 행동할 수 있는 즐거운 변화를 경험할 수 있었다.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당장 삶의 변화와 마음의 평화가 동시에 찾아오더라, 흐흐.

리더십과 자기기만8점
아빈저연구소 지음, 차동옥.서상태 옮김/위즈덤아카데미

2009년 9월 01일

애증의 회사 from GQ 9월호

Posted by 마코토팬더 in 아슬아슬한 인생

GQ 9월호를 보다가 도저히 혼자 두고 볼 수 없어 옮겨적는 Office 코너의 기사  “애증의 회사”.

 ”회사랑 연애하는 것도 아닌데, 왜 자꾸 마음이 좋았다 싫어지는 걸까.”로 시작하는 이 글을 읽으면서 처음 몇 줄까지는 배를 잡고 웃었는데, 계속 읽다보니 어느새 뒷목을 잡게 되더라고. 모든 항목에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왠지 심금을 울리는 그런. 요 얄딱구리한 감상, 어디 한 번 함께.

회사가 좋을 때 | 휴가비 입금됐다는 메시지를 받았을 때
회사가 싫을 때 | 휴가비가 서울-부산 간 왕복 기름값도 안 될 금액이라는 것을 확인했을 때

좋을 때 | 올해는 여름 휴가 5일 써도 된다고 팀장이 말해줄 때
싫을 때 | 휴가 낼 때 되니 팀장이 슬쩍 와서 “자리 비워도 문제없겠냐”고 물어볼 때

좋을 때 | 퇴근할 때
싫을 때 | 퇴근할 때 상사가 전화기는 항상 켜두라고 할 때

좋을 때 | 팀장이 약속 없다고 혼자만 야근하면 된다고 할 때
싫을 때 | 팀장이 연애를 시작하더니 이제는 나 혼자 야근하고 있을 때

좋을 때 | 내 업무에 대해선 아무도 간섭하지 않고 누가 감히 끼어들지도 못할 정도로 업무영역을 확실히 인정받을 때
싫을 때 | 그래서 입사 이후 10년 동안 줄창 똑같은 일만 해야 할 때

좋을 때 | 바쁜 프로젝트 끝나고 월화수목 ‘탱자탱자’ 놀 때
싫을 때 | 금요일에 갑자기 일 들어와 주말출근 해야 할 때

좋을 때 | 징검다리 연휴 쫙 붙여 진짜 연휴 만들어 줄 때
싫을 때 | 그 붙인 휴일, 내 연차에서 하루 뺀 걸 알았을 때

좋을 때 | 젊은 직원들끼리 MT 간다고 하니 회사에서 비용 지원해줄 때

싫을 때 | 그 MT에 팀장, 부장, 이사까지 다 끼어들 때

좋을 때 | 임직원 명절 선물로 ‘닌텐도DS’ 돌렸을 때

싫을 때 | 다음 달 월급 보니 제세공과금 5만원 깎였을 때

좋을 때 | 오늘처럼 오전에 비가 마구 와서 은행에 손님 없을 때

싫을 때 | 오늘처럼 오후에 비가 그쳐 오전 손님까지 들이닥칠 때

좋을 때 | 경기도 어려운데 생각지도 못한 상여금이 나올 때

싫을 때 | 그래놓고 연봉 동결할 때

좋을 때 | 월급날 월급 들어온 통장을 봤을 때

싫을 때 | 그 다음 날 카드값 나간 후의 통장 잔고를 봤을 때

좋을 때 | 회식으로 쇠고기 먹을 때

싫을 때 | 회식이 끝날 줄 모를 때

좋을 때 | 회사에서 메신저 자유롭게 할 때

싫을 때 | 팀장이 메신저로 설명도 제대로 안 해주고 던지듯 업무 전달할 때

좋을 때 | 동료들끼리 잘 맞아서 일할 때도, 놀 때도 즐거울 때

싫을 때 | 그 중 진짜 싫은 동료가 눈치 없이 끼어들려고 할 때

좋을 때 | 괜찮은 신입사원이 조수로 배정됐을 때

싫을 때 | 진상 아저씨가 사수로 배정되었을 때

좋을 때 | 새로 온 팀장이 기념으로 좋은 데서 술을 쏠 때

싫을 때 | 새로 온 팀장이 알고 보니 술 마시면 개가 될 때

좋을 때 | 금요일 저녁

싫을 때 | 일요일 저녁

좋을 때 | 노처녀 팀장이 언제나 퇴근 후 다양한 문화생활을 경험하게 해줄 때

싫을 때 | 근데 그게 주말에도 계속 될 때 (남자만 없는 게 아니라 친구도 없는 거였다.)

좋을 때 | 회식 중 팀장이 법인카드만 놓고 집에 갈 때

싫을 때 | 월말에 재무팀의 호출을 받을 때

좋을 때 | 팀장이 갑자기 집안에 급한 일이 생겨 오늘부터 모레까지 안 나온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싫을 때 | 모레까지 안 나올 줄 알았는데 갑자기 둘째 날 오후에 출근했을 때

좋을 때 | 오전 중에만 출근하면 되는 자유로운 분위기의 회사에 입사했을 때

싫을 때 | 하지만 퇴근도 다음 날 오전 중에 하는 것을 알아버렸을 때

좋을 때 | 사내 연애 할 때

싫을 때 | 사내 연애 끝냈을 때

좋을 때 | 새로 온 팀장이 기념으로 좋은 데서 술을 쏠 때

싫을 때 | 새로 온 팀장이 알고 보니 술 마시면 개가 될 때

좋을 때 | 쿨한 사업 파트너가 형, 동생으로 지내자고 할 때

싫을 때 | 그 쿨한 형이 정작 계약 때는 더 독하게 굴 때

좋을 때 | 화분처럼 바라보기만 해도 예쁜 여대생 인턴이 들어왔을 때

싫을 때 | 잦은 야근으로 한 달 만에 그 화분이 시들었을 때 (회사가 망쳐놓은 새싹)

좋을 때 | 여름에 아직 뜬 해를 보며 퇴근할 때

싫을 때 | 겨울 아침에 일어나 출근할 때

좋을 때 | 동남아 다녀온 국장님이 신종 독감처럼 콜록거릴 때

싫을 때 | 그냥 독감에 불과할 때

좋을 때 | 회사가 싫은 이유가 선뜻 생각나지 않을 때

싫을 때 | 딱히 좋은 이유가 하나 없을 때

* 이 기사를 쓴 에디터 손기은님은 이 주옥같은 사연들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 정리한 것일까, 아니면 손수 창작해 낸 것일까. 만약 후자라면 정말 무한의 존경심을. 어쩔 때는 이런 생각을 차곡차곡 정리하는 사람들이 그럴 듯한 자기계발서를 쓰는 사람들보다 더 대단해보인다.

2009년 8월 12일

영화, “10억”

Posted by 마코토팬더 in 곤조없는 영화 사랑

영화 "10억"
* 아주 약간의 스포일러 있습니다.

휴가 중 아무 생각없이 틀어놓았던 TV의 영화 정보 프로그램에서 보고 꽂혀 갑작스레 보게 된 영화 “10억”. 기대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봐줄 만한 스릴러였다. 이색적인 소재에 괜찮은 연기력의 배우도 다수 출연했고 호주의 자연경관도 아름답고 하다보니 일단 보는 재미가 그럭저럭 괜찮았다. 덮어놓고 힘있게 이야기를 끌고가는 대담무쌍의 연출도 인상적이었고. 하지만 리얼 서바이벌 쇼를 소재로 9명의 캐릭터(존재감이 약했던 카메라 기사는 제외)를 무려 호주까지나 데려가서 이야기를 펼친 스케일에 비하면 아쉬운 점이 더 많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가장 아쉬웠던 점은 리얼리티의 결핍. 영화 초반부에 참가자들에게 제시되는 게임의 내용이 김빠지게 유치했고, 각 캐릭터들이 부자연스럽게 과장되게 그려진데다가, 한 명 한 명 죽어나가는 과정에서 극한의 상황에 내몰리게 된 참가자들의 감정 연출도 다소 엉성해 리얼리티가 뚝뚝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이야기의 중심에 선 장PD(박희순 분)의 캐릭터는 말투부터 표정 하나하나까지 부담스럽기 그지 없어 광기로 변질된 그의 복수심에 좀처럼 감정이입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무척 흥미진진하게 즐길 수 있었던 이유는 이야기의 끝에 짠, 하고 밝혀지는 충격적인 결말 때문. 다소 진부한 구석도 없지 않지만, 전형적인 스릴러적 구조에서 맛볼 수 있는 긴장감은 괜찮은 편이었다. 뭐 여기에 대해서도 다른 감독이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식의 잡념을 떨쳐버릴 수는 없지만, 흐흐.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아쉬운 부분이 많았던 영화. 이 영화에 대한 나의 별점은 대충 ★★★☆쯤 되겠다. 아쉬운 게 많다보니 누구에게든 보라고 선뜻 권하지는 못하겠는데 내가 낸 영화비가 전혀 아깝지는 않다, 정도의 느낌이랄까. 3개에서 덧붙인 별 반 개는 발군의 연기를 선보인 박해일, 신민아와 정유미 때문. 특히나 고시생 안경의 어리버리 정유미 – 처참한 최후가 안습이지만, 그래도 죽기 전까지 너무 귀여웠;;

2009년 7월 20일

이규호, “담배 끊기”

Posted by 마코토팬더 in 수다스런 쥬크박스

이규호 1집, Alterego

이규호 1집, "Altere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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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는 그럭저럭 사회적으로는 ‘금연인’으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 요즘, 오랜만에 들은 이규호의 “담배 끊기”가 가슴에 와 꽂힌다. 나를 비롯한 나의 초 측근들은 최근 누군가를 위해 담배를 끊은 상황. 담배 없는 관계를 상상할 수도 없었던 아저씨들끼리 마주 앉아  담배없이 커피나 홀짝거리고 있자면 그 모양새가 참 볼만하다.

이런 사람들끼리 종종 함께 금연에 대한 화제를 나누면 감상은 대체로 비슷한데 – 냄새가 싫어서, 건강에 안좋으니까 등등의 이유로 금연을 권하는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지만, 담배란 “나를 위해서 그것도 못해?”라는 하는 요구에 그냥 “알았어”하고 수도꼭지 잠그듯이 바로 뚝 끊을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도 좀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거. 어쩌다가 금연의 언약을 깨고 다시 담배를 물었다가 발각되었을 때 겪게되는 곤란함은 내가 세상 살면서 경험한 여러가지 곤란함 중에서도 앞세워 손에 꼽을만큼 강했다. 흡연을 예찬하고 싶지는 않지만 금연의 언약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은 무한한 자비심으로 옹호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든다.

세상의 모든 연인들에게 바라건데 – 자신의 상대가 금연의 언약을 잠깐 어겼다 하더라도 그를 단번에 신용할 수 없는 인간으로 치부해 버리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끝내 금연하지 못하는 당사자야말로 세상 누구보다 자신의 몸 속에 남아있는 니코틴들을 치약 짜듯 바싹 훑어 짜내버리고 싶은 사람일지도 모르니까.

어텐션플리즈

이제 당신은 캐빈 어텐던트의 계란이 된거니까요. – 아직 계란인건가요?
비행기가 어떻게 하늘을 날 수 있는지 알아? 무리라고 생각하지 않는 인간이 있었기 때문이야. 이렇게 커다란 쇳덩이에 사람을 태우고 하늘을 날려고 했었다니.

“키사라기”의 감독, ‘사토 유이치’의 전작들을 뒤지다가 보게 된 드라마 “어텐션 플리즈”. 2006년에 방영되었던 드라마로 ‘캐빈 어텐던트’ (CA, Cabin Attendent)라고 부르는 항공승무원을 꿈꾸는 일본항공(JAL) 훈련생들의 이야기를 유쾌하게 그린 성장물이다. 주인공이 짝사랑하는 남자가 실없이 흘린 말 한마디에 동하여 지나치게 분발한 나머지 어리버리 캐빈 어텐던트 훈련에 입문하게 된 후, 혹독한 훈련과정을 거치며 번뇌와 방황을 반복하다가 끝내 캐빈 어텐던트로 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당당히 설 수 있게 된다는 식의 이야기.

주인공 미사키 요코는 천방지축에 자신의 일을 좀처럼 진지하게 생각할 줄 모르는 성품이지만, 자신의 노력과 주변의 격려에 힘입어 잠재되어 있던 열정과 재능을 발견하고 성장하는 인간으로, 전문직을 소재로 한 트렌디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주인공 캐릭터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동경하는 대상인 캐빈 어텐던트의 직업 특성상 주인공의 직업적인 성장이 여성으로서의 인간적인 성장과 그대로 오버랩되어 느낄 수 있는 재미와 감동이 독특하게 느껴졌다. 특히 주인공 미사키 요코와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그녀를 엄하게 지도하는 미사미 교관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에피소드들이 꽤 풋풋.

주인공 미사키 요코를 연기한 우에토 아야(上戸彩)의 깜찍한 연기와 미사미 교관을 연기한 마야 미키(真矢みき)의 캐스팅이 참 마음에 들었다. 나카하라 쇼타 군을 맡은 니시키도 료(錦戸亮)는 “라스트 프렌즈”에서 본 음울한 이미지가 여전히 남아있어 이 드라마에서는 꽤 풋풋한 청년을 연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비호감이었다.

일본 드라마 특유의 오버스러운 소란함을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에게나 추천. 엉뚱한 주인공의 성장 드라마에 적절한 러브러브 스토리, 밝고 귀여운 친구들의 에피소드까지 함께 섞여 코믹하게 전개되는 모양새가 “노다메 칸타빌레”와도 많이 닮아있는데, 실제로 노다메만큼 재미있기도 하다. 일본에서는 방영 당시 그야말로 ‘대히트’였다고 하는데, 그 위세 덕인지 2007년과 2008년에 스페셜도 두 편이나 나와있더라는.(하와이편, 호주 시드니편). 스페셜도 서둘러 찾아봐야겠다.

2009년 7월 05일

Mignon 홍합요리

Posted by 마코토팬더 in 밥은 잘 먹고 다니니까

Mignon의

유쾌한 fab님께서 즐겁고 신나는 만남을 위해 일찍감치 골라놓으셨다는 환상의 저녁코스 중 첫번째 – 벨기에 레스토랑 “Mignon”의 홍합요리. “Mignon”은 홍합요리가 맛있어 이름난 곳이라는 해설대로 다양하고 맛나보이는 홍합요리들이 그득하게 있었다. 우리는 약간 매콤한 홍합요리를 선택, 살짝 얼큰하면서도 한국 요리에는 없는 깔끔한 맛이 일품이었다. 함께 시킨 크림소스가 들어간 닭고기 스프 – fab님의 소개에 따르면 삼계탕의 크림소스 버전이었던가, 아무튼 – 도 참 중독성있는 맛이었다. (사진을 찍기는 했으나 전혀 안 맛있어 보이게 나온 관계로 과감하게 생략)

정신없이 홍합을 까먹으면서 예전에 프랑스 여행 중 홍합요리 한 냄비를 홀로 뚝딱 비우셨었다는 fab님의 식도락담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퍼덕퍼덕 끄덕였었다. 홍대 앞 “홍가”처럼 “홍합 무한리필” 같은 서비스가 있다면 더 행복할테지만 그건 아무래도 무리겠지, 큭.

이태원이어서 원래 그런건지, 그 날만 유독 그랬었는지 한껏 이국적이었던 식당 분위기도 인상적. 그동안 이태원으로는 좀처럼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었는데, 귀한 친구와 다시 찾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기분 좋은 식사였다. 조만간 꼭 한 번 다시!

20081127 | 이태원 | GRD2
싸이월드 블로그 2008.12.08일자 포스트

2009년 7월 05일

김규항, “예수전”

Posted by 마코토팬더 in 말 끝 흐리는 독서노트

사용자 삽입 이미지정말 오랜만에 한 권의 책을 다 읽었다. 출간 전부터 많은 기대를 가지고 있었던 김규항의 “예수전”. 나는 모태신앙으로 카톨릭 교회를 통해 하느님을 믿어왔고, 최근 개신교 신앙에 관심을 가지고 성경과 말씀을 공부하고 있다. 이런 입장에서 때마침 ‘실천적 영성가’로서 치열한 삶을 살았던 인간 예수의 삶을 묵상해보고자 하는 시도에 관심이 갔던 것은 당연. 시간적 여유가 많이 없었던 탓도 있지만, 한 장 한 장마다 고민할 거리도 많고 묵상할 거리도 많아 한 번을 통독하고 책장을 덮는데 정말 많은 시간이 걸렸다. 좋은 책이기도 했지만, 참 힘든 책이기도 했다.

김규항은 머리말에서 예수를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인물이자 가장 많은 오해에 휩싸인 인물’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예수전’을 그 오해의 일부라도 걷어내고 싶어 시작한 작업이라고 했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예수전”은 훌륭한 결과물이다 싶은 것이 가장 앞서는 감상. 이 책은 마르코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삶의 구석구석에서 그가 태어났던 이래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의 지금까지 지배세력이나 세속적인 교회에 의해 왜곡되어 온 부분들을 예리하게 집어내고 바로 잡는다. 그러면서 그는 예수의 말씀들 속에서 예수가 교회 속의 사람들 뿐 아니라 현대 시민사회에서 ‘꿈꾸고 상상하지 않으려는’ 모든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있음을 찾아 전한다.

교회와 교리의 테두리 안에 있지 않아도, 심지어 교회와 교리에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다 해도 하느님 나라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면 진정한 신앙을 가진 사람이지만, 교회와 교리의 테두리 안에서 제아무리 성실하고 충성스럽다 해도 하느님 나라 운동에 참여하고 있지 않다면 진정한 신앙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교회에 다니지 않는 혹은 다른 종교를 가진 어떤 사람이 열심히 교회에 다니는 그 어떤 사람보다 하느님 보시기에 참신앙을 가진 사람일 수 있으며, 기독교가 전래되기 전에 죽어 하느님이 뭔지 예수가 누구인지 조차 모르는 제 3세계의 수많은 인민들 가운데에도 하느님 보시기에 참신앙을 가진 사람이 허다한 것이다.

보수 교회에선 이런 사실을 엄격하게 부인하는 것을 마치 하느님을 타협 없이 섬기는 일인 것처럼 말하지만, 그런 태도는 실은 하느님을 자신의 교회 체제에 가두어 놓으려는 말도 안 되는 수작일 뿐이다. 우리가 한낱 인간으로 존경하는 사람이 있어, 그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전할 때도, 혹시라도 내 생각이 그의 본디 생각에 못 미칠까 걱정하며, 그런 걱정을 함께 전하는 법이다. 그런데 어떻게 하느님의 생각을 전하면서 그리 오만하고 권위에 찬 태도를 가질 수 있겠는가? 하느님을 섬긴다는 건, 하느님의 뜻을 헤어리려 힘닿는 데까지 노력하면서도 미처 하느님의 뜻을 헤어리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음을 겸손하게 인정하는 태도이지, 앙상한 교리와 신학을 내세워 자신이 하느님의 권한을 완전히 위임받은 양 구는 태도가 아니다.

본문 69페이지, 3장 20~35절 강독 부분 중

하지만 아쉬움도 많았던 책. 우선 강독 형식을 택한 책의 집필 방식이 가장 아쉬웠다. 김규항은 예수에 관한 ‘김규항의 견해’보다는 ‘예수의 견해’를 더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 강독의 형식을 채택했다는 변을 머리말에서 붙였다. 하지만 나는  강독의 형식이 오히려 예수의 말씀과 삶을 전반적으로 넓게 고민해보고 깊이 이해하는 데에는 방해가 되었다. 더불어 예수의 삶에 대해 풀어 쓴 김규향의 견해 역시 산만하게 다가왔다는 느낌. 책의 구석구석에서 그의 통찰력이 돋보이는 부분이 많았지만 그의 생각이 강독의 형식에 묶여 불필요하게 반복되어 전달되거나 때때로 마르코 복음서 기록의 비약을 따라 순간적으로 생뚱맞게 표류하는 경우도 있지 않았나 싶다. 오히려 그가 원래 생각했던 것처럼 성서 분문을 인용하는 형식으로 ‘김규항의 견해’에 집중하는 방식이라면 차라리 어땠을까. 개인적으로 그런 식의 구성이 김규항이 의도했던 예수의 모습을 전하는데는 더 효율적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해석 중 객관적인 사료나 근거없이 단순히 ‘김규항의 상상’에 의해 자의적으로 해석한 듯한 부분들이 눈에 띄어 거슬리는 점도 있었다. 예수의 말씀으로부터 ‘김규항의 견해’까지 가기 위해 논리적으로 비약할 수 밖에 없는 빈자리를 채우기 위한 듯 보이기도 해 이해할만한 여지도 있지만, 때때로 이러한 상상으로 인해 견해를 온전히 받아들이는데 오히려 거부감이 생기기도 했다. 차라리 상상을 빌어 조심스럽게 이야기하는 대신 직접 풀어가며 ‘김규항의 견해’를 좀 더 강하게 이야기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뭐 이렇다 저렇다 해도 분명 김규항의 “예수전”은 꽤 괜찮은 시도.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있지만, 자기 자신만의 구원과 세속적인 욕망 만을 투사한 믿음으로 세상을 피폐하게 만드는 그릇된 신앙이 많다 싶은 현실이다. 이런 세상에서  용기있게 자신이 발견한 ‘실천적인 혁명가’로의 예수를 이야기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책을 충분히 지지할 만하다.  특히 현실에 대해 깊이 통찰하면서 정의롭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실천적인 방법을 예수의 삶 속에 찾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기운나는 묵상거리들을 많이 던져주는 책이었다. 출간 전 합정동 ‘벼레별씨’에서 몇 주간 저자의 “예수전 강의”가 있었는데, 들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냥 미뤄뒀던 것이 좀 아쉽다. 내가 “예수전”을 읽으며 좋았던 부분들을 나누고 아쉬웠던 부분에 대한 오해를 풀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을 것 같은데 말이지. 특히나 신앙적인 간증을 나누는 것과는 다른 느낌으로 예수의 삶에 대해 여러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 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으니까 말이다. 그런 기회가 다시 있다면 꼭 참석해보고 싶다.

이 책에 대한 나의 별점은 대략 ★★★쯤. 현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크리스천들의 기행(奇行)들 때문에 예수의 삶 자체에 대해 막연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나 자신의 예수를 이미 보수적인 교회의 교리 속에 가둬버린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이 책을 읽은 다른 사람들의 서평들을 읽다가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의 김진호 연구실장(알고 보니 예수전 표지 뒷장에 추천의 말을 적은 사람이 바로 요 김진호님)의 저서, “예수의 독설”
란 책을 알게 되었는데, 이 책 역시 “예수전”과 비슷하게 역사 속의 예수에서 실천적인 메시지를 찾아낸 작업인 것 같다. 기회가 된다는 이 책도 함께 읽어보고 “예수전”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구절을 한 꼭지 소개. 내가 바라는 신앙의 모습도, 김규항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의 가장 깊은 뿌리도 결국 이런 생각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느님을 섬긴다는 건 이런저런 종교적 형식에 기대어 나를 초월적인 상태로 끌어올리는 행위가 아니다.
하느님을 섬긴다는 건 지금 내 삶을 지배하는 온갖 부질없는 집착과 욕망들을 씻어 내고 내 본디 모습으로, 하느님의 모습대로
돌아가는 것이다. 돈이나 권력, 명예나 세속적인 성공 따위에 대한 사랑을 나에 대한 사랑으로 착각하는 삶을 끝내고 나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 그것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삶이다. 하느님은 내 안에 존재하며 또한 모든 다른 내 안에 존재한다. 내
아내에게도 내 자식에게도 내 부하나 노예에게도, ‘내’라는 말을 붙이지 않는 모든 낯모르는 사람들에게도 하느님은 존재한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건 나를 사랑하는 일이자 동시에 모든 나를 사랑하는 일이다.

본문 203페이지, 12장 28~34절 강독 부분 중

*  이 글을 다 썼을 때 즈음, “예수전”에 대한 우석훈 교수의 감상평도 읽게 되었는데, 바싹 긴장한 채 적은 나의 포스트보다 훨씬 편안한 글이지만 내 글과는 비교도 안되게 깊은 식견과 통찰력이 베어있다. 왠지 급 부끄러워져서 이 글의 [삭제] 버튼에 마우스를 올리고 누를까 말까 한참동안 고민했더랬다, 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