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나의 집착

2009년 7월 01일

밑줄을 그은 문장

Posted by 마코토팬더 in 말 끝 흐리는 독서노트

오래전에 읽은 책을 펼쳐보면 붉은 색연필이나 심이 두터운 연필로 밑줄을 그은 문장을 만날 때가 있다. 어떤 건 다시 읽어보아도 왜 밑줄을 그었을가 이해할 수 없는 그런 문장도 있다. 사람도 그러하다. 이전에 좋아햿던 사람을 다시 우연히 만나게 되었을 때 내가 이 사람의 어떤 면을 좋아했던 걸까, 도무지 알 수 없는 그런 일도 있다.

 
_ 정미경의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 중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에서

작년 이 맘때 부터 가을이 시작될 무렵까지 늘상 숨이 가득 차올라 있었던 여름에게 복수라도 하려는 듯, 읽고 또 읽었던 정미경의 책을 다시 꺼내 읽었다. 때때로 문장 속에서 내 자신이 떠올라 스스로를 흠집 내었고, 때때로 다른 사람을 떠올리며 다시 그 상처를 보듬게 되던 이상한 독서 – 올 여름 다시 읽는 정미경의 문장은 그 누구에게도 상처로 다시 적히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싸이월드 블로그 2008.08.10일자 포스트

2009년 7월 01일

Jim Jamusch, “Coffee and Cigarette”

Posted by 마코토팬더 in 곤조없는 영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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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와 커피에 대한 11가지 에피소드를 묶은 Jim Jamusch 감독의 영화 “Coffee and Cigarette”, 이들 이야기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에피소드는 Iggy Pop이 나오는 “Somewhere In California”다. 담배를 끊겠다고 선언한 첫 날, 친구 k의 이야기 때문에 문득 다시 떠올린 이 Scene, 보다보니 거칠고 무딘 “곰다방”의 커피와 그 커피맛에 참 잘 어울리던 담배 연기가 문득 그리워진다.

싸이월드 블로그 2008.09.11일자 포스트

2009년 7월 01일

Musical Compatibility

Posted by 마코토팬더 in 아슬아슬한 인생

Last.fm의 Musical Compatibility 체크 결과
Last.fm의 Musical Compatibility 체크에서 나온 이런 결과, 왠지 기분 좋아진다.
마치 누군가와의 Emotional Compatibility 에서 합격점을 받은 거 같은 기분.

문득 무라카미 하루키의 “100퍼센트의 여자아이를 만나는 일에 관하여”라는 단편이 떠올랐다. 마침 예전에 미니홈피에 손수 타이핑하여 포스팅해 두었던 것이 있어 슬쩍. 예전에 이 소설 참 좋아했었는데, 그러고 보니 나 벌써 이 소설 속 주인공의 나이와 가까워져 버렸어;;

[#M_무라카미 하루키, 100퍼센트의 여자아이를 만나는 일에 관하여|본문 감추기|

4월의 어느 해맑은 아침, 100퍼센트의 여자아이를 만나는 일에 관하여

4월의 어느 해맑은 아침, 하라주쿠의 뒤안길에서 나는 100퍼센트의 여자아이와 엇갈린다.


직히 말해 그다지 예쁜 여자아이는 아니다. 눈에 띄는 데가 있는 것도 아니다. 멋진 옷을 입고 있는 것도 아니다. 머리카락
뒤족에서 나쁜 잠버릇이 끈질기게 달라붙어 있고, 나이도 적지 않다. 벌써 서른 살에 가까울 테니까. 엄밀히 말하면 여자아이라고
할 수도 없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50미터 떨어진 곳에서부터 그녀를 알아볼 정도다. 그녀는 내게 있어서 100퍼센트의 여자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모습을 목격하는 순간부터 내 가슴은 땅울림처럼 떨리고, 입안은 사막처럼 바싹 말라 버린다.


쩌면 당신에게도 좋아하는 여자아이 타입이라는 것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가령, 발목이 가느다란 여자아이가 좋다든지, 역시 눈이 큰
여자아이라든지, 손가락이 절대적으로 예쁜 여자아이라든지, 잘은 모르겠지만 천천히 식사하는 여자아이에게 끌린다든지와 같은 식의.

나에게도 물론 그런 기호는 있다.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다가, 옆 테이블에 앉은 여자아이의 코 모양에 반해 넋을 잃기도 한다.

그러나 100퍼센트의 여자아이를 유형화하는 일은 아무도 할 수가 없다. 그녀의 코가 어떻게 생겼었나 하는 따위는 전혀 떠올릴 수가 없다. 아니, 코가 있었는지 어땠는지조차 제대로 기억할 수 없다.

내가 지금 기억할 수 있는 것은, 그녀가 그다지 미인이 아니었다는 사실 뿐이다. 왠지 조금 이상하기도 하다.

"어제 100퍼센트의 여자아이와 길에서 엇갈렸단 말이야" 하고 나는 누군가에게 말한다.
"흠, 미인이었어?"라고 그가 묻는다.
"아니야, 그렇진 않아."
"그럼, 좋아하는 타입이었겠군."
"글쎄, 생각나지 않아. 눈이 어떻게 생겼는지, 가슴이 큰지 작은지, 전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겠다구."
"이상한 일이군."
"이상한 일이야."
"그래서, 무슨 짓을 했나? 말을 건다든가, 뒤를 밟는다든가 말야."
"하긴 뭘 해, 그저 엇갈렸을 뿐이야."

그녀는 동에서 서로, 나는 서에서 동으로 걷고 있었다.

제법 기분이 좋은 4월의 아침이다. 비록 30분이라도 좋으니 그녀와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녀의 신상 이야기를 듣고도 싶고, 나의 신상 이야기를 털어놓고도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1981년 4월 어느 해맑은 아침에, 우리가 하라주쿠의 뒤안길에서 엇갈리기에 일느 운명의 경위 같은 것을 밝혀 보고 싶다. 거기에는 틀림없이 평화로운 시대의 낡은 기계처럼, 따스한 비밀이 가득할 것이다.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난 후 어딘가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우디 알렌의 영화라도 보며, 호텔 바에 들러 칵테일이나 뭔가를 마신다. 잘만 하면, 그 뒤에 그녀와 자게 될지도 모른다. 가능성이 내 마음의 문을 두른다.

나와 그녀 사이의 거리는 벌써 15미터 가량으로 좁혀졌다. 자, 도대체 어떤 식으로 그녀에게 말을 걸면 좋을까?

"안녕하세요. 단 30분만, 저와 이야기를 나누지 않겠습니까?"
이건 너무나 바보스럽다. 마치 보험 권유 같이 않은가?

"미안합니다. 이 근처에 혹시 24시간 영업 세탁소가 없는지요?"
이 역시 같은 정도로 바보스럽다. 무엇보다도 내 손에 세탁물 주머니조차 없지 않은가. 누가 그런 대사를 신용하겠는가?

어쩌면 솔직하게 말을 꺼내는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

"안녕하세요. 당신은 나에게 100퍼센트의 여자아이란 말입니다."

니, 틀렸어. 그녀는 아마도 이런 대사를 믿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설령 믿어 준다 해도, 그녀는 나와 얘기하고 싶어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당신에게 있어 내가 100퍼센트의 여자라 하더라도, 나에게 있어 당신은 100퍼센트의 남자는 아닌걸요,
죄송하지만"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만약 사태가 그렇게 되면 나는 틀림없이 혼란에 빠질 것이다. 나는 그 쇼크에서 두 번 다시 회복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내 나이 벌써 서른 두 살, 결국 나이를 먹는다는 건 그런 것이 아닐까.

꽃가게 앞에서, 나는 그녀와 엇갈리게 된다. 따스하고 조그마한 공기 덩어리가 피부에 와닿는다. 아스팔트로 포자된 길 위에는 물이 뿌려져 있고, 언저리에서는 장미꽃 향기가 풍기고 있다.


는 그녀에게 말을 걸 수도 없다. 흰 스웨터를 입은 그녀는 아직 우표도 붙이지 않은 흰 사각 봉투를 오른손에 들고 있다. 그녀는
누군가에게 편지를 쓴 것이다. 그녀의 눈이 졸린 듯한 것으로 봐서, 어쩌면 하룻밤 동안 그것을 썼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사각
봉투 속에는 그녀에 관한 비밀이 전부 들어 있는지도 모른다.

몇 걸음인가 걷고 나서 뒤돌아보았을 때, 그녀의 모습은 이미 혼잡한 사람들 사이로 사라지고 없었다.

물론 지금은, 그때 그녀를 향해 어떻게 말을 걸었어야 했는가를 확실히 알고 있다. 그러나 어떻든 간에 너무나도 긴 대사이므로 틀림없이 제대로 말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내가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언제나 실용적이지 못하다.

아무튼 그 대사는 "옛날 옛적에"로 시작되어, "슬픈 이야기라고 생각지 않습니까"로 끝난다.


날 옛적에, 어느 곳에 소년과 소녀가 있었다. 소년은 열여덟 살이었고, 소녀는 열여섯 살이었다. 그다지 잘생긴 소년도 아이었고,
그다지 예쁜 소녀도 아니었다. 어디에나 있는 외롭고 평범한 소년과 소녀였다. 하지만 그들은 틀림없이 이 세상 어딘가에
100퍼센트 자신과 똑같은 소녀와 소년이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렇게, 그들은 '기적'을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기적은 확실히 일어났다.

어느 날 두 사람은 거리 모퉁이에서 딱 마주치게 된다.

"놀라워, 난 줄곧 너를 찾아다녔단 말야. 네가 믿지 않을는지 모르지만, 넌 내게 있어서 100퍼센트의 여자아이란 말이야"하고 소년이 소녀에게 말한다.
"너야말로 내게 있어서 100퍼센트의 남자아이야. 모든 것이 모두 내가 상상했던 그대로야. 꼭 꿈만 같아."

두 사람은 공원 벤치에 앉아서, 서로의 손을 잡고 언제까지나 실컷 얘기를 나눈다. 두 사람은 이미 고독하지 않다. 그들은 각기 100퍼센트의 상대자를 원하며, 자신은 그 상대자의 100퍼센트가 되고 있다.

100퍼센트의 상대자를 원하며, 상대자의 100퍼센트가 된다는 것은 그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것은 이미 우주적인 기적인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마음 속에 얼마 안되는, 극히 얼마 안되는 의구심이 파고든다. 이처럼 간단하게 꿈이 실현되어 버려도 괜찮은 것일까 하는.

대화가 문득 끊어졌을 때, 소년이 말한다.

"
이봐, 다시 한 번만 시도해 보자. 가령 우리 두사람이 진정한 100퍼센트의 연인이라고 하면, 반드시 언제 어디선가 다시 만나게
될 거야. 그리고 이 다음에 다시 만났을 때도 역시 서로가 서로의 100퍼센트라면, 그때 바로 결혼하자구. 알겠니?"
"응, 알았어."


리고 두 사람은 헤어졌다. 서쪽과 동쪽으로. 그러나 사실을 말하자면, 시도해 볼 필요는 조금도 없었다. 그런 것은 해서는 안될
일이었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진정 100퍼센트 완벽한 연인이었으니까. 그것은 기적적인 사건이었으니까.

하지만 두 사람은 너무나 어려서, 그런 것은 이해할 수조차 없었다. 그리고 정석처럼 비정한 운명의 파도가 두 사람을 마구 농락하기에 이른다.


느 해 겨울, 두 사람은 그 해에 유행한 악성 인플루엔자에 걸려, 몇주일간이나 사경을 헤맨 끝에, 옛날 기억들을 몽땅 잃고
말았던 것이다. 어찌된 일일까. 그들이 깨어났을 때 그들의 머리 속은 마치 D.H. 로렌스의 소년 시절 저금통처럼 완전히 텅
비어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참을성 있는 소년과 소녀였기 때문에, 노력하고 또 노력해서 다시금 새로운 지식과 감정을
터득하여, 훌륭히 사회에 복귀할 수 있었다.

아아 하느님, 그들은 진정 확고한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정확하게 지하철을 가아타거나 우체국에서 속달을 부치거나 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리고 완벽하지는 못해도 75퍼센트의 연애랑, 85퍼센트의 연애를 경험하기도 헀다.

그렇게 해서 소년은 서른두 살이 되었고, 소녀는 서른 살이 되었다. 시간은 놀라운 속도로 지나갔다.

그리고 4월의 어느 해맑은 아침, 소년은 모닝 커피를 마시기 위해 하라주쿠의 뒤안길을 서쪽에서 동쪽으로 향하고, 소녀는 속달용 우표를 사기 위해 똑같은 길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향한다.

두 사람은 길 한복판에서 엇갈린다. 잃어버린 기억의 희미한 빛이 두 사람의 마음을 한순간 비춘다. 그들의 가슴은 떨린다. 그리고 그들은 안다.

 
그녀는 내게 있어서 100퍼센트의 여자아이란 말이다.
그는 내게 있어서 100퍼센트의 남자아이야.

그러나 그들이 간직하고 있는 기억의 빛은 너무 연약하고, 그들의 언어는 이제 14년 전만큼 맑지 않다. 두 사람은 그냥 말없이 엇갈려, 혼잡한 사람들 사이로 사라지고 만다. 영원히.

슬픈 이야기라고 생각지 않습니까.
그렇다. 나는 그녀에게 그런 식으로 말을 꺼내 보았어야 했던 것이다._M#]싸이월드 블로그 2008.09.26일자 포스트

2009년 7월 01일

한우 업진살 1등급

Posted by 마코토팬더 in 밥은 잘 먹고 다니니까

한우업진살 1+
일요일 인천집에서 한껏 늦잠을 자고 일어나서 부엌에 나갔다가 산울림의 김창완 아저씨가 ‘한밤중에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어보던’ 분위기로 엄마가 나를 구워주려 꺼내놓으신 “한우 업진살”을 발견했다. “업진살”이란 대체 어떤 부위를 두고 부르는 이름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근에 무려 24,000원 48,000원이나 하는 가격에 후덜. 막상 먹어보니 아침 나절부터 고기를 굽던 기묘한 식탁에서도 감탄사가 줄줄 풀려나오더라. 같은 부위를 사간 누나네 부부는 서로 한 점 더 먹겠다고 다투기까지 했다고. 아무튼 모처럼 참 맛있던 쇠고기. 예전엔 아무래도 돼지고기가 더 맛있지 않나 싶었지만 나이를 먹어서인지 보들보들하게 씹히다가 스르륵 녹는 쇠고기가 더 맛있더라. 물론 “비싼 쇠고기”의 경우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겠지만.

그런데, 사진을 올리며 다시 보니 유통기간이 지났네. 그래도 맛있었;;

 
20081214 | 인천 연수동 | GRD2
싸이월드 블로그 2008.12.15일자 포스트

2009년 7월 01일

명동 시부야 오코노미야끼

Posted by 마코토팬더 in 밥은 잘 먹고 다니니까

명동 시부야의 오코노미야끼
사람들이 ‘오코노미야끼 가게’ 하면 보통 “츠루하시 후게츠(風月)”를 많이 이야기하는 것 같다만, 나는 개인적으로 “츠루하시 후게츠”는 참 별로.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오코노미야끼 가게는 단연 홍대 주차장길의 “NO SIDE”이다. 어쩌면 내가 히로시마식 오코노미야끼를 더 좋아하기 때문일 수도 있는데, 선호하는 취향이 간사이式 인지 히로시마式 인지를 떠나 “츠루하시 후게츠”의 맛은 이상하게 정이 가지 않는다.

만약 “츠루하시 후게츠”에서 했던 식사가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있는데 그것이 맛 자체보다 철판에 둘러앉아 오코노미야끼를 굽는 분위기 때문이었다면 “츠루하시 후게츠”보다는 여기, 명동의 “시부야”를 추천. 분위기는 왠지 동네 치킨집 같이 우중충하고, 메뉴도 지극히 단순하지만 – 돼지/새우/오징어 베이스 재료를 고르고 거기에 토핑을 추가하는 식 – 맛 만큼은 “츠루하시 후게츠”보다 훨씬 나은 거 같다. 아쉽게도 “돈베이야끼” 같은 메뉴가 없지만 그래도 맛있는 야끼소바 쯤은 있으니 용서가 된다. ‘도전’에 가까운 시도였으나 평소 오코노미야끼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친구마저 만족해서 뿌듯했던 저녁. 다음에는 “몬쟈”에도 도전해봐야겠다.

20081126 | 명동 | GRD2
싸이월드 블로그 2008.12.08일자 포스트

코코이찌방야의 "로스까스카레"

사진만 봐도 침샘이 흥건해지는 '코코이찌방야'의 "로스까스카레". 크림고로케 토핑추가는 필수.


최근 먹었던 점심메뉴 중 가장 맛났던 아이를 꼽으라면 단연 ‘CoCo壹番室’(코코이찌방야)의 “로스까스 카레”. 카레를 병적으로 좋아하는 까닭에 서울 시내의 이런저런 카레집을 전전긍긍하며 찾아다니던 중 발견한 궁극의 카레로다. 도쿄에 가면 요시노야와 더불어 눈에 밟히게 많은 체인이었는데, 정작 처음 맛 본 것은 국내 2호점이라는 종로점에서. 밥의 양과 매운 정도, 각종 토핑들을 골라 조합할 수 있는 메뉴가 편리하고 합리적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토핑 메뉴는 크림 고로케. 부드럽게 살살 녹는 식감이 그동안 먹어본 그 어떤 고로케의 것과도 비길 수 없을 만큼 훌륭했다. 고등학교 급식메뉴에나 어울릴 법하게 마른 돈까스를 내어놓는 홍대 모 카레집과 달리 토핑으로 나오는 돈까스의 맛도 제법.

찍어온 사진이 적절치 않아 비주얼하게 소개하지는 못하지만, 이 가게, 카레 못지 않게 오무라이스들도 심히 괜찮았다. ‘런치의 여왕’에서나 보던 후들후들한 느낌의 계란에 쌓인 오무라이스를 현실에서 직접 만나볼 수 있는게다.

사진을 올리는 지금, 한참 출출하던 차였는데 취식하던 순간에 대한 얄팍한 회상만으로도 침샘이 한껏 흥건해지는구나. 문득 만화 “심야식당”의 ‘어제의 카레’ 에피소드에 있던 한 컷의 문장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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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어인 “ここ壹番室”를 우리 말로 옮기면 ‘여기, 최고로 맛있는 집’ 쯤의 뜻. 한국식으로 치자면 대략 “전국에서 두번째로 맛있는 집” 정도의 간지인 셈이다. 왠지 없어보이는 업소명이다 싶은데, 그래도 맛만큼은 확실하게 있으니 뭐, 괜찮은 듯.

20090327 | 종로 | GRD2
싸이월드 블로그 2009.04.15일자 포스트

2009년 6월 21일

영화 “키사라기” (キサラギ, 2007)

Posted by 마코토팬더 in 곤조없는 영화 사랑

키사라기 스틸컷

영화 초반은 그저 지독한 오덕들의 찌질한 파티가 시작되는 정도의 분위기였다. 하지만.

키사라기 미키에 대한 모든 자료를 읽어본 제 생각이니 틀림없습니다.
자, 봐라. 오다 유지 탐정의 추리는 계속 된다고.
네가 죽인거냐?
어떻게 그런 것까지 아는거지? 당신 뭐하는 자야? 말해봐.

소녀 아이돌 ‘키사라기 미키’의 자살 1주기를 추모하는 팬모임에서 차근차근 밝혀지는 죽음의 진실. 모임의 시작은 그저 아이돌 스타를 좋아하는 오덕들의 만남에 지나지 않았지만, 참가자 한 명 한 명의 정체가 밝혀지고, 그들 각자의 이야기가 다른 사람 이야기의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그녀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도 서서히 풀려나간다. 코믹한 전개 속에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풀리는 미스테리 구조가 매력적.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진 5명의 캐릭터가 좌충우돌 난동을 부리는데도 어느 하나 튀거나 묻히지 않은 채 그저 마키짱을 사랑하는 풋풋한 아저씨들 무리로 적절하게 잘 묶어낸 연출력도 칭찬하고 싶다.

사건의 전말이 밝혀낸 후, 오오이소 롱비치에서 노래하는 키사라기 미키짱의 비디오를 보며 다섯 남자가 함께 춤을 추는 엔딩씬은 살짝 감동적이기까지. 이런 감상에 100% 싱크되어 풋풋한 기분에 빠지게 되는 걸 보면 나도 은근 오덕의 기질을 타고난 듯 싶다.

감동의 엔딩씬. 혼자 보고 있었다면 아마 나도 저들과 함께 춤추며 풋풋한 감상에 젖어들었을 것 같다.

이 영화에 관련된 포스팅들을 보다보면 역시나 오구리 슌에 대한 이야기가 많던데(오구리 슌 때문에 기대하고 봤는데 별로였다던가 하는 식의 사연. 사실 이 영화에서 오구리 슌은 정말 별로다.), 이 영화에서 가장 빛나는 배우는 역시나  카가와 테루유키. 봉준호 감독의 “흔들리는 도쿄”와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도쿄 소나타”에서 나온 그를 무척 좋아했었는데, ‘딸기소녀’로 등장하는 이 영화의 캐릭터를 보고는 완전 사랑하게 되었다.

키사라기 스틸컷

"딸기소녀" 카가와 테루유키. 아아, 너무 귀엽다. ㅠ_ㅠ

이 영화에 대한 나의 별점은 ★★★★ 쯤. 내가 별점에 워낙 후한 탓도 있지만, 이 영화는 내가 좋아하는 류의 공식에 정확히 부합하는 영화였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는 도중, 여운을 남기려는 듯 어설프게 끼워넣은 장면이 영 마음에 안들어 별 반 개쯤을 넣을까 뺄까 한참동안 고민. 일본식 코메디가 섞인 가벼운 미스테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적극 추천, 오구리 슌이 나오니까 봐야겠다 싶은 사람들에게는 절대 추천하고 싶지 않다.

사토 유이치 감독에 대한 기사들을 찾다보니 바로 어제, 그의 신작인 “수호천사(守護天使)”가 일본에서 개봉된 것 같다. 한국의 극장에서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기대된다. (영화 “수호천사”를 소개하는 민경욱님의 블로그.)

2009년 6월 15일

플레이모빌

Posted by 마코토팬더 in 아슬아슬한 인생

플레이모빌 - 수영장 소녀 (4681)

어제 젠젠양에게 선물받은 플레이모빌 수영장 소녀 (4681)


홍대 앞 teeCAT에서  젠젠양에게 플레이모빌을 선물받았다. 귀여운 수영장 소녀 모델. Nikon F3 스러워 보이는 카메라를 목에 걸고, 책도 들고 호젓하게 에어 매트리스 위에서 노닥거리고 있는 모냥이 너무 귀엽다. 이 아이는  “아침에 일어나서 예쁘게 옷을 입고”로 시작되는 중독성 별 *5개급 광고의 “영플레이모빌”과는 다른 오리지날 독일 Playmobil사의 제품. ‘영플레이모빌’은 국내 업체인 영실업이 Playmobil사로부터 라이센스를 획득해 생산/판매했던 제품이라고 한다. 어느 날 후다닥 국내에서 모습을 감춘 것은 영실업이 재질 등에 대한 규정을 위반한 관계로 Playmobil 계약이 해지되면서 생산이 중단되었던 탓. 요즘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면 간간히 다시 보이는데, 최근 아이큐박스라는 업체에서 오리지날 제품들을 수입하고 있는 덕이란다.

기억을 떠올려 보면 이 플레이모빌, 내가 어렸을 때 즈음에는 “레고”, “GI 유격대”와 함께 순수한 유년의 마음 속에서 강렬한 탐욕의 정서를 이끌어 내던 절대 로망의 완구였다. 부자집 자녀가 아니라면 세트로 소장하기에 완전 무리인 가격과 구성의 장난감이었지만, 서민 가정의 아이들도 산타 할아버지라는 최후의 희망을 빌어 그럭저럭 꿈꾸곤 했던 그런 완구. 그랬던 플레이모빌을 나이를 제법 먹고 이런 장난감 한 두개 쯤 피식 웃으며 사버릴 수도 있는 재력의 어른이 되고 나서 다시 만나는 마음이 묘하다. 그 때 그 시절 막연히 갖고 싶은 마음에
땡깡부리다가 얼렁뚱땅 손에 쥐게 되었던 감상보다 유년시절의 추억을 곱씹으며 플레이모빌을 만지작하게 되는 지금의 풋풋한 마음이 한편으로 더 훈훈하기도 하다 싶은 느낌. 하지만 플레이모빌을 마음껏 살 수 있게 되었다고 해서
지금의 내가 그 때의 나보다 행복한 건 절대 아니니까, 뭐 그런 게 묘하다는 이야기.

2009년 5월 29일

나도 그처럼 아름답게 살고 싶다

Posted by 마코토팬더 in 아슬아슬한 인생

전용기에서 라면 먹고 있는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의 비공개 사진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 - 전용기에서 라면 먹고 있는 대통령

故 노무현 전대통령의 영결식이 있는 아침, 모처럼 TV를 켜고 와이드쇼 류의 아침 방송을 보았다. 영결식의 준비상황을 중계하면서 노 대통령의 삶을 재조명하는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었다. 프로그램 내용 중 노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안희정씨와의 인터뷰도 있었는데, 이 때 소개된 노 전대통령의 일화가 너무 인상깊었다.

일화는 2002년 대선 후보들의 TV 토론 때의 이야기. 당시 한나라당 후보였던 이회창 대표가 토론에서 ‘옥탑방’과 연관된 질문을 한 것에 대해 물은 패널의 질문에 ‘옥탑방이 뭐냐?’고 되물어 ‘귀족 후보’라 조롱받으며 비난받았더랬다. 그 다음 날 같은 TV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한 노무현 대통령도 똑같이 ‘옥탑방’에 대한 질문을 받았는데, 노무현 대통령 역시 모른다고 답하였다. 이회창 후보의 전날 토론에서 워낙 크게 이슈가 되었던 부분이라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옥탑방에 대해 모를리가 없었을 터. 토론을 마친 후 안희정씨가 답답한 마음에 ‘거짓말로라도 안다고 하지 말씀하지 그러셨냐’라고 이야기했는데, 그 말에 노무현 대통령은 전날 이회창 후보의 토론을 볼 때 자신도 옥탑방에 대해 모르고 있었고 그 사실을 아들(노건호 씨)이 있는데, 내가 TV에 나와서 ‘옥탑방’을 안다고 대답할 수 없지 않겠냐고 답하였었다고 한다.

뻔뻔함이 미덕이 되는 시대에 정직한 삶, 원칙과 소신을 지키는 삶을 살았던 그의 인생 역정은, 자신이 생각하고 말한 것들을 실천하고자 노력하며 살았다는 증거 그 자체였다. 그가 남긴 시대 정신과 가치가 더 이상 더렵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도 그가 살았던 것처럼 아름답게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람들의 세상보다 편안할 하느님 나라에서, 부디 영면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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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01일

100분 토론, 기막힌 보수 논쟁

Posted by 마코토팬더 in 아슬아슬한 인생

오랜만에 100분 토론을 보았다. 오늘의 타이틀은 “보수가 말하는 한국 보수의 진로”. 채널을 고정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금새 목 뒤가 점점 뻣뻣해지는 것을 느꼈다. 공중파에서 가장 시청률이 높은 토론 프로그램에 패널로 나온 식자들이 나누는 논쟁이 우습다 싶을 정도로 유치하게 느껴졌기 때문.

이른바 “뉴라이트 vs. 정통 보수의 이념 논쟁”이 주된 화두. 하지만 이념 논쟁은 토론의 개시와 함께 사라진 느낌이고, 정체성과 일관성이 상실된 언쟁만 무차별적으로 오가는 양상이다. 보수 세력을 두고 따져볼 수 있는 양면에 대해 양측 모두 ‘좋은 면은 나의 것, 부정적인 면은 나의 것이 아니다’라는 식의 이야기를 제 편한대로 끌어다가 설명하는 장일 뿐이다. 이런 걸 토론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사실상 두 세력 간에 이념적인 차이는 전혀 없다. 그렇다보니 오늘의 100분 토론은 두 가지의 다른 이념을 가진 논쟁이라기보다 새로운 ‘보수 정권’에서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과 기득권으로부터 소외된 사람들 간의 말싸움 뿐이구나 싶은 정도의 인상에 그친다.

특히 자유주의를 옹호하고 합리적인 사고로 대한민국을 걱정한다는 ‘뉴라이트’ 진영은 자신들의 존재 가치를 아름답게 이야기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지난 시절을 지배했던 권위를 부정하고 새로운 권위를 세우려는 또다른 기득권 세력에 그치지 않는다는 느낌이었다. 특히나 이들이 현 정부를 화두에 두고 한껏 늘어놓는 호평과 각종 사회적인 이슈들에 대한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는 주장들은 손발이 바싹 오그라들도록 간지러웠다.

진보 진영을 두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동정’을 쫓는 세력이라고 말한 전원책 변호사는 오늘 토론에서 이 시대에 건실한 진보 진영이 없다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마무리 발언에서 서경석 목사는 이 시대의 진보를 보며 참담한 기분마저 든다고 말했다. 토론에서 그들의 말을 듣던 나는 그 말을 받아쳐 건실한 보수도, 합리적인 보수도 없어 안타깝다고 말할 기분조차 들지 않았다. 짜증이 북받쳐올랐다.

언젠가 읽었던 컬럼에서 홍세화는 ‘건강한 보수’의 존재 자체를 부정했다. “진정한 보수는 오히려 진보다”가 그의 주장. 그의 주장에 어느 정도 동의하고 있는 나는, 이 나라에서 “자신이야말로 진정한 보수”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새삼 따져 묻고 싶어졌다. 당신들이 생각하는 자신의 정체는 대체 무엇인지.


가급적 새 블로그에는 정치적인 포스트를 적지 않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오늘 토론을 보다보니 도저히 몇 자 적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더라. 다음 주 토론은 “진보가 말하는 진보”. 조금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다음 주에는 어떤 감상을 적고 싶어질지 살짝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