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가 시집올 때 해 온 냄비. 33년 동안이나 함께 해왔지만, 오늘로 그만 안녕.
인천 본가가 연수동으로 이사온 지 13년만에 인테리어 공사를 했다. 덕분에 이런저런 살림살이들을 잔뜩 버렸는데, 오늘 버린 것들 중 그냥 버리기에 왠지 가슴이 짠해지는 아이템들이 몇 개 있었다.
그 중 단연 으뜸은 이 냄비. 33년 전 시집 올 때 엄마가 사온 거란다. 당시 우리집은 수도국산에 살았었는데, 그 수도국산의 그릇가게에서 2,500원에 사가지고 왔던 거라고. 그동안 할머니가 깨를 볶을 때 즐겨 사용하셨던 완소 아이템이었다. 나도 어렸을 때부터 이 냄비 위에서 고소하게 볶아지던 참깨들을 보았던 기억이 있다. 새 냄비가 넘쳐나고, 깨 볶는 일마저 별로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안녕”하게 된 셈인데, 버리는 순간까지도 할머니가 너무 안타까와 하시니 괜실히 내 마음까지 뭉클해지더라.
오늘 하마트면 버려질 뻔하다가 아슬아슬하게 겨우 살린 아이템들도 몇 개 있었다. (그 중에는 할머니가 60년 전 시집 오실 때 해오셨다는 도자기 두 개도 있다.) 언젠가는 이 아이들도 깨 볶는 냄비처럼 버려져야만 하겠지만 그래도 아직은 애틋한 마음이 더 커서 좀 더 곁에 두고 싶은 욕심이 생겼던 오늘. 꽤나 촌스럽고 거추장스럽지만 돌이킬 수 없는 추억의 물건으로 변해버리는 순간을 조금씩이라도 늦춰두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어쨌든, 노란 뚜껑의 깨 볶는 냄비와는 어쩔 수 없이 오늘로 안녕. 재활용되어 다시 태어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동안 정말 수고 많았네. 따져보면 이 냄비님, 나보다 어른이라 존대말로 인사해야 되는건가 잠시 고민. 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