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히가시노 게이고를 읽게 된 것은 약간의 오해 때문이었다.
최근 나는 이사카 코타로에 푹 빠져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의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우도 잦은 편이었다. 혹시 누군가 “어때?” 하고 묻는다면 “미스테리적인 요소가 가미된 발칙한 이야기다” 정도로 라고 대답하곤 한다. 일종의 레퍼토리 같은 감상인 셈.
그러던 중, 최근 미스테리적인 요소가 가미된 호러 무비 시나리오를 집필하고 있는 김택수와 이사코 코타로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나는 역시나 비슷한 감상을 전했는데 그 때 김택수는 본인의 상황 탓이었지 어쨌는지 “미스테리”라는 단어에 무척이나 신경썼던 것 같다.
그래서 그는 이사코 코타로가 재미있다는 나에게 선뜻 히가시노 게이고를 권했나 보다. 물론 몇일 후 이사카 코타로를 읽어 본 그가 “그 미스테리가 아니었나봐”라고 말하며 미안해 했다. 이사카 코타로는 그냥 미스테리적인 요소가 장난스럽게 가미된 정도의 소설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는 말 그대로 “쌩” 미스테리 소설인 탓. 하지만 뭐 재미있다니깐. 그리고 난 이미 “용의자 X의 헌신” 주문해서 배송까지 받은 상태였으니깐. 어쩔 수 없는, 뭐 그런.
어쨌든 그렇게 읽게 되었던 “용의자 X의 헌신”인데 소설은 그야말로 최고였다. 책 표지에 쓰여져 있던 카피처럼 정말 읽는 도중에 도저히 멈출 수 없었다. 어찌나 열심히 읽었는지 반나절 만에 마지막장까지 모두 읽어버렸다. 책을 덮고 한참 숨을 골랐다. 김택수의 추천사처럼 히가시노 게이고는 그야말로 “천재”였던 게다.
나는 미스테리 작가들이 글을 쓰는 일은 일종의 3차원 공간을 만드는 일과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독자들은 2차원적인 그림만을 인지하지만 작가는 그보다 한차원 더 입체적으로 인물과 사건들에 대해 고민하겠구나 싶은 것. 그래서 미스테리 작가들은 소설에 표현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상상하고 구체화한 다음 펜을 들었을 것 같다. (펜을 드는 대신 [시작] -> [프로그램]에 [Microsoft Word]를 클릭했을 수도 있고.)
그런 면에서 히가시노 게이고는 정말 우아하고 완벽한 골조를 짜고 이야기를 쓰는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용의자 X의 헌신”은 시작부터 끝까지 한 호흡으로 숨막히게 끌고 가는 이야기였지만 군더더기라고는 한 부분도 찾을 수 없었다. 그야말로 경제적인 이야기 전개. 물론 거기에 내가 읽어내지 못했거나 그럴 여지도 없이 작가가 미리 잘라냈을 이야기들이 너무나도 많을 것 같았다. 책을 읽다보면 작가가 머리 속에 담았던 수많은 이야기 거리들 중 가장 재미있게 읽힐 만큼만 잘라 낸 이야기를 즐기는 거로구나 싶은 기분이 든다.
거기에 하나 더 좋았던 것은 미스테리일 뿐인 미스테리가 아니라는 것. 소시적에 읽던 아가사 크리스티 시리즈 같은 것은 왠지 딱 미스테리일 뿐, 그 이상은 아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더랬다. 범인이 어떤 트릭을 감춰두면 누군가 우여곡절 끝에 그 비밀을 모두 풀고, 그러면 이야기는 댕강 끝이 나버리는 식의 미스테리들. 반면”용의자 X의 헌신”은 트릭이 풀린 다음 맥이 빠지는 류의 미스테리가 아니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가슴 속에 뭔가 뜨끈한 덩어리가 남더라. 그렇다고 그 덩어리 만들기에 전전하지도 않는다. 매정하다 싶을 만큼 절절한 이야기도 딱 필요한 만큼만.
모처럼 읽은 미스테리였던지라 사실 별 기대없이 읽었었던 것이었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곤란해졌다. 여차하다간 풋풋한 연말에 미스테리만 파는 수가 있겠다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른 소설 “백야행”이 마침 전자책으로 있길래 장바구니에 담아두었지만 아무래도 한 숨 쉬었다 읽어야 할 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