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달 전 쯤 읽었던 이사카 코타로의 “중력 삐에로”를 다시 읽었다. 다시 읽었다지만 그 때 끝까지 읽지 못하고 중간에 덮었으니 두 번 읽은 것은 아닌 셈. 그래도 어쨌거나 처음 읽은 건 아니니까 – 이거 완전 “이건 처음 읽은 것도 아니고 다시 읽은 것도 아니여.”로군. -_- (같기道 버전)
그 때 난 e북 업체에서 일하고 있었던 덕에 늘 갓 출판된 책들을 얻을 수 있었다. 그 때 이 “중력 삐에로”도 얻었더랬다. 새로 들어온 책들 중 멋진 일러스트와 자극적인 제목에 끌려 냉콤 집어 들었었던게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당시 요상하게 바빠서 재미를 느낄 만큼 책장을 많이 넘기지도 못했었다. 그리고 보통 공짜로 얻은 책은 이상하게 열심히 읽게 되질 않더라. 그러다가 어느 술자리에선가 취한 김에 기념삼아 누군가에게 건내주고 말았었다. 그렇게 잠시 안녕.
그러고 나서 서너달 쯤 지나 우연히 “칠드런”을 읽게 되었다. 그리고 뒤늦게 이사카 코타로에 무섭게 빠져들었다. 이 “중력 삐에로”까지 해서 번역 출판된 건 이사카 코타로 소설은 모두 다 읽은 것 같다. 이 양반 소설, 정말 한 권 한 권 읽을 때마다 점점 더 중독된다. 무척 센스있지만 재는 법은 결코 없는 유쾌한 문체며 가볍고 경쾌한 이야기 흐름, 어느 순간 흐트러졌던 퍼즐 조각들을 슬금슬금 정리해서 스윽- 내밀 듯 뒷통수치는 반전 등등 이사카 코타로를 칭찬할 이유는 너무 많으니깐.
하지만 무엇보다 이사카 코타로가 좋은 건 책갈피를 꽂아두고 마구 꽂아두고 싶은 멋진 구절들이 많기 때문. 나는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으면 집히는 종이를 아무거나 끼워두거나 페이지를 접어 두는데, 이사카 코타로 소설들은 읽을 때 마다 10% 쯤 두께가 늘어나는 것 같다.
그의 소설들 중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은 건 “오듀본의 기도”, 그리고 오늘 다 읽은 “중력 삐에로” 쯤. “오듀본의 기도”에서 그랬듯 “중력 삐에로”에도 역시 등장인물들의 지적이고 유쾌한 대화가 가득했고, 이야기의 끝에는 어김없는 통쾌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었다. 특히 DNA나 인류의 진화, 간디의 어록을 들먹이며 주고 받던 이즈미-하루 형제와 아버지의 대화들은 밑에 깔린 복선을 걷어내더라도 ‘읽는 재미’를 주기에 충분했다.
책을 덮고나서 들던 생각 중 하나 – 이런 무서운 작가를 두고 있는 일본 문학계가 너무 부럽다는 거. 어쩌다 한 명도 아니고 셀 수 없이 많아서 더더욱. 일본 문학계는 이미 재미있으니까 많이 읽고, 많이 읽어서 좋은 작가들이 더 많이 나오게 되는 선순환의 리듬을 타고 있는게다.
오늘 마침 내 블로그의 포스트 하나가 한페이지 단편소설의 “오늘의 한단설 Referer”로 소개되어 이 쪽에서 여러 양반들이 넘어오고 계시는데(아, 서진씨가 무슨 의도로 내 블로그를 걸어놓으셨는지 모르겠지만 – 이거 참 민망하고 부담스럽다.) 이런 대안출판 프로젝트라던가 글쓰기 모임, 책 읽는 파티 같은 것들이 많아지고 활발해져서 우리 문학계에도 재미있는 소설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