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나의 집착

22 12, 2006

스물여덟의 마지막 월급날

Posted by: 마코토팬더 In: 아슬아슬한 인생

오늘 한국 나이로 스물 여덟, 만 나이로 스물 일곱에 받는 마지막 월급을 받았다. 내 스물 여덟살 인생이 5일도 채 남지 않은 것이다. (영업일 기준) 오랜 세월 월급을 드문드문 받거나 못 받기도 했었지만 급여소득자의 인생을 산 것도 햇 수로 벌써 5년째이고.

문득 일 년 동안, 아니 스물 일곱 해 동안 고생한 내가 너무 기특했다. 그래도 막상 생각하니 나를 대견해 하면서 스스로에게 선물해 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더라. 왠지 서글픈 생각이 들어 꾸역꾸역 7011번에 올라 타고 극동방송국 옆 좁다란 그 골목으로 찾았다. 그리고 나에게 따뜻한 하카다분코 돈고츠 라멘 한 그릇을 사 줬지. “그동안 너 수고했다고.”

퇴근하려고 보따리를 싸면서 오늘 신한은행에서 받은 통장 지갑도 챙겼다. 그 지갑 속엔 곧 일곱 개가 될 통장이 여섯 개 들어 있었다. (물론 개수만 많을 뿐 잔고는 무척 빈약하다.) 홍대로 오는 버스에서는 PDA에 지출 계획을 꼼꼼하게 정리하면서 “아, 이 달엔 책도 사지 말고, 술도 먹지 말아야겠구나.”하며 속상해 했다.

맨날 소년, 소년하면서 속이고 살았어도 결국 나도 모르게 점점 집요하게 어른이 되는 연습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경제학과 다니면서도 몰랐던 MMF니 RP니 하는 것들을 스스로 찾아보게 되었고, 2007년 1월에 분양하는 아파트들의 입주 공고를 살펴보게 되었다. 기타 살 돈이 없어 몇 일 밥도 안먹고 근심하던 나였는데 이제는 주택 마련자금이 없어 그 때보다 열 배는 더 근심하면서도 밥은 꾸역꾸역 더 잘 챙겨먹고.

천년만년 살 수도 없거니와 소년인 채로 있을 수는 없는 것이겠다만, 어른이 된다는 것이 이런 것인 줄 알았다면 가급적 천천히 어른이 될 껄 그랬다, 라고 적을려다 보니 나이 잔뜩 쳐 먹고 이런 소리하는 것도 꼴 사납구나 싶은 생각이 들더라. 왠지 더 서글프다.

아이고, 내 청춘. 아이고.

6 Responses to "스물여덟의 마지막 월급날"

1 | vinzip

1월 7th, 2007 at 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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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아직 20대가 꺽이지 않아서 아직까지는 좋다고 생각되는데, 아…이거 놀리는거 아닌데, 그냥 인생의 선배님으로써 30대에 접어들기 직전이신데 무섭진않나요? 그냥 순수하게 받아들여지나요? 왠지 30대는 그러니깐…충분히 젊은층인데도 왠지 그런….음…

2 | 양치기소년

1월 7th, 2007 at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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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섭고 어쩌고 하기엔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이 흐른 것 같아요. 어른들 들으시면 화내실지도 모르겠지만 – 서른이 된다고 해서 뭔가 크게 달라질 것 같지도 않고 겁도 별로 안나요. 다만 30살이라는 나이를 기점으로 계획하고 꿈꿨던 것들이 너무 거창했던지라 그게 좀 걱정스럽군요.

3 | soy

1월 8th, 2007 at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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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나는 (두렵던) 30을 넘기면서 더 여유로워진 느낌인걸.
나이를 먹어가다보면 그 나이에 맞게 또 그렇게 살아가게 되는 것같아.
못했던 일들도 하게되고말이지… ㅎㅎㅎ

4 | 양치기소년

1월 8th, 2007 at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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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30살이 되는 건 두렵지 않아요. 30살이 되고 나면 정말 씩씩하게 더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걱정되는 건 그동안 너무 크고 거창한 꿈들의 D-day를 30살 되기 전, 그러니깐 스물 아홉 12월 31일에 두었다는 거죠, 흐흐.

잘 지내시죠? 아직은 서른 살이라고 할 때 본 누나가 이제 벌써 서른 넷이네. 오랜 만의 인사치곤 너무 얄궂은가? 하하 :D (홍대 앞에서 차 한잔 해요, 정말로)

5 | trendon

1월 8th, 2007 at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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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감성이 높으신 분 같다는 느낌이네요.
전 올해로 20대의 중턱의 고지에 올랐습니다. 전역하고 나니 금방이네요. 이제 뭘 해야 할지 중대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6 | 양치기소년

1월 8th, 2007 at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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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감성이 높은 양반인 것 같다니, “이거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후후-

전역하고 나서 이래저래 근심이 많아지시죠? 저는 고만한 후배들한테는 학점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당장 취업보다 더 중요한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구라를 치면서 돌아다니는데 그러고 집에 와선 혼자 막 근심하고 그래요.

그래도 멀리 보고, 차분하게 생각하고 열심히 준비해서 좋은 뜻 이루시길 바래요. 정말 진심 막 담아서 화이팅 날려드립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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