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로 집을 나와 혼자 산지 딱 3주가 되었다.
처음에 이 집에 내 짐을 들이던 날, 과연 내가 이 곳에서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밀려왔었다. 하지만 싱크대를 바꾸고(첫 날밤 심란한 감상의 가장 큰 줄기는 싱크대에 닿아있었다.) 1층 할머니의 버려진 공터같은 생활용품 콜렉션에 익숙해지고, 바퀴벌레에 익숙해지고, 혼자 밥을 차려 먹는 것에도 익숙해지면서 나는 영락없는 ‘이 집 사람’이 되었다. 나는 아주 소수의 몇 가지 경우를 제외하고 환경이 바뀌면 그 이전의 환경은 새하얗게 잊어버리는 성향이 있는데 그런 성향 덕을 톡톡히 봤다. 나는 이 집 전의 내 생활을 이미 잊은 듯하다. 이 집에 충분히 익숙해졌다.
혼자 살기로 결심하면서 내세웠던 캐치프레이즈는 “나는 자취 이상의 것을 하는 사람” 쯤. 3주쯤 지나 평가하자면 나는 분명 이를 실천하며 살고 있다. 다만 문제는 그 ‘이상의 것’이 온갖 집안 일과 혼자 술마시는 일로 채워지고 있다는 점. 지난 3주간 나는 정말 청소, 빨래, 설겆이 등의 온갖 집안일들을 ‘똑소리나는 새댁’ 소리라도 들으려는 듯 치열하게 해내고 있다. 그리고 술 – 인천 집에 살던 나는 좀처럼 혼자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이었으나, 지금은 어찌나 열심히 혼자 마시는지 모르겠다. 물론 밤마다 맥주 큐팩을 두 통씩 먹고 잔다던가 하는 식은 아니고 가볍게 드라이진이나 보드카를 2-3잔쯤 마시고 자는 정도. 인천 집에 살 때만 해도 술은 맥주, 소주 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이 세상엔 혼자 마시기 좋은 술도 참 많더라. 그런 술들을 찾는 것도 하나의 재미인 것 같고. 하지만 계속 이런 식은 곤란하다. 좀더 즐겁고 기름진 일에 에너지를 쏟자.
(어머니 말씀대로) 장가를 간 것도 아니고 좋은 집을 산 것도 아닌데 어제 한바탕 집들이를 했다. 말이 집들이었지 회사 직장동료 다섯이 수색동 35*-16번지를 찾아 엠티라도 하는 행색이었다. 그들 중 절반은 유부남, 절반은 노총각. 이들은 모두 단단히 작정이라도 한 듯 각자의 반바지와 세면도구를 싸들고 왔다. 회사를 마치고 함께 나와 서울역 롯데마트에서 카트 가득 장을 봤지만 반의 반도 먹지 못한채 잠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즐거운 밤이었다. 어제 사람들을 맞으며 한 생각인데 우리 집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찾아오는 사람들을 위한 준비’가 잘 되어있는 집이었다. 난 스스로를 무척 개인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늘 사람들 속에 있으려고 애쓰는 사람인 것 같다. 누군가 계속 내 집에 찾아와줬으면 하는 바램, 하지만 누구와도 같이 살고 싶지 않은 이율배반적 감상 – 어쨌든 몇차례의 집들이가 더 남았다.
자세한 사정을 풀자면 좀 곤란한 부분들이 있기에 딱 잘라 말하면 – 나는 ‘집안 사정상’ 집에 가족들을 두고 혼자 나와서 살면 안되는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어쩔 수 없다는 핑계를 대며 가벼운 마음으로 집을 나왔다. 은연 중에 나를 짓누르고 있던 압박들로부터의 자유. 나는 태어날 때부터 혼자여야 했던 사람인데 그간에 ‘어쩔 수 없는 사정상’ 가족들과 함께 살았던 것처럼 편하고 즐겁게 지낸다. 혼자라서 참 좋다. 하지만 떨어진 가족들은 나를 무척 그리워한다. 엄마와 할머니는 서로 번갈아 가며 하루에도 몇번씩 전화하신다. 그들은 내가 그들을 그리워하는 것보다 적어도 30배쯤은 더 나를 그리워하는 것 같다. 내가 너무 정이 없는 건지 다른 문제가 있는 건지 모르겠다. 이런 고민을 하다보면 나같은 사람이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하며 내 가정을 꾸린다 한들 그들에게 내가 받은 만큼의 사랑과 관심을 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갑자기 걱정이 밀려온다.
이 글 하나를 쓰는 동안 나는 다섯 잔의 보드카를 마셨다. 물론 중간에 잠깐 누워 잠도 잤고, 자전거를 끌고 한강에도 다녀왔고, 한 번의 샤워와 두 번의 용무로 욕실을 들락거렸으며, 회사로부터 전화를 받고 간단한 장애처리 작업도 하였다. 이렇게 보드카를 마시고, 집들이를 하고, 자전거를 타고, 청소와 빨래로 주말 여가시간을 채우며 다섯 달 쯤 더 혼자 살고 나서는 내 감상은 어떨까? 물론 그동안도 이 곳 저 곳에 혼자 사는 감상을 꾸준히 적어두겠지만, 딱 다섯 달 쯤 지나고 이 곳에 다시 한 번 종합적인 자취 감상을 남기고 싶다. 그 때 즈음에는 부디 좀 더 기름진 일들로 일상을 채우고 있기를. 가족들을 좀 더 그리워할 수 있기를. 집안일에 좀 더 노련해지기를. 해충박멸에 성공하여 더 이상 바퀴벌레나 집게벌레에 대한 고민 따위를 하고 있지 않기를.




